어떤 팀은 공격적인 야구를 합니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치고, 주루에서 과감하게 뜁니다. 어떤 팀은 기다리는 야구를 합니다. 볼넷을 골라내고 투구 수를 올리면서 상대를 소모시킵니다. 이 차이를 팀 컬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팀 컬러가 감독이 만드는 건지, 아니면 선수들이 만드는 건지 경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감독이 바뀌면 팀 컬러가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바뀌어도 팀 컬러가 유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수들이 바뀌면 팀 컬러가 달라지기도 하고, 선수 구성이 비슷해도 감독에 따라 다른 야구가 나오기도 합니다. 팀 컬러가 어디서 만들어지는지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팀 컬러가 감독이 만드는 것인지 선수가 만드는 것인지를 보면 야구에서 리더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보입니다.
감독이 방향을 설정하고 선수가 실행한다
팀 컬러 형성에서 감독의 역할은 방향 설정입니다. 어떤 야구를 할 것인지의 철학을 정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입니다. 빠른 주자를 활용한 기동력 야구를 할 것인지, 장타력 중심의 득점 야구를 할 것인지, 철저한 투수 중심 수비 야구를 할 것인지를 감독이 결정합니다. 이 방향이 타순 구성, 작전 선택, 선수 기용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감독이 방향을 설정해도 선수가 실행하지 못하면 그 컬러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기동력 야구를 하고 싶어도 빠른 선수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장타력 야구를 원해도 홈런 타자가 없으면 실현되지 않습니다. 감독의 철학이 팀 컬러가 되려면 그 철학에 맞는 선수가 있어야 합니다. 감독과 선수가 맞을 때 팀 컬러가 선명해집니다.
프로야구의 특정 감독 체제에서 수비 중심 야구를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야구가 가능했던 건 감독의 철학도 있었지만 수비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감독이 바뀌고 선수 구성이 달라지면서 그 컬러가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팀 컬러는 감독과 선수가 함께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감독이 방향을 설정하고 선수가 실행한다는 구조가 팀 컬러의 기본 메커니즘입니다.
핵심 선수가 팀 컬러의 중심이 되는 경우
어떤 팀에서는 핵심 선수 한 명이 팀 컬러를 만드는 중심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선수가 경기에서 보여주는 방식이 팀 전체의 방향이 되는 경우입니다. 공격적으로 타석에 서는 4번 타자가 있으면 팀 전체 타선이 그 에너지를 따라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운드에서 강하게 승부하는 에이스가 있으면 불펜 투수들도 그 방식을 배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팀 컬러가 감독보다 선수에 의해 형성됩니다. 감독이 바뀌어도 그 핵심 선수가 남아있으면 팀 컬러가 유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KBO에서도 특정 선수가 있는 동안 팀이 일관된 야구를 하다가, 그 선수가 떠난 뒤 팀 정체성이 흔들리는 듯한 장면을 볼 때가 있습니다. 선수 한 명이 팀의 야구 철학을 대표하는 경우입니다.
반대로 감독의 철학이 강해서 핵심 선수가 바뀌어도 팀 컬러가 유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수는 바뀌어도 그 감독 아래에서는 같은 방식의 야구가 나오는 팀입니다. 감독의 시스템이 선수 개인보다 더 강하게 팀 컬러를 결정하는 경우입니다. 어느 쪽이 더 강한지는 팀마다 다릅니다.
핵심 선수가 팀 컬러의 중심이 될 때 그 선수의 부재가 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기록 이상으로 크게 나타납니다.
팀 컬러는 시간이 만드는 것이다
팀 컬러의 가장 중요한 형성 요인은 시간입니다. 감독과 선수들이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공유하는 경험이 쌓이면 그것이 팀 컬러가 됩니다. 이기는 방식을 함께 경험하고, 지는 방식을 함께 겪고, 그 안에서 무엇이 효과적이었는지를 팀 전체가 알게 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짧으면 팀 컬러가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감독이 자주 바뀌거나 선수 구성이 매 시즌 크게 달라지는 팀은 팀 컬러가 선명하게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이 자리 잡기 전에 또 바뀌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감독과 핵심 선수들이 오랫동안 함께하는 팀은 그 과정에서 독특한 팀 컬러가 만들어집니다. 삼성이 특정 시기에 강팀으로 불렸던 건 그 팀이 오랜 시간 쌓아온 팀 컬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팀 컬러는 감독 혼자 만들지도, 선수 혼자 만들지도 않습니다. 감독의 철학과 선수의 실행이 시간을 통해 녹아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이긴 경기와 진 경기, 좋은 시즌과 나쁜 시즌이 모두 팀 컬러의 재료가 됩니다. 팀 컬러가 선명한 팀일수록 강팀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 컬러가 흔들리지 않을 때 팀이 일관되게 강합니다.
팀 컬러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 팀을 보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개별 경기의 결과보다 그 팀이 어떤 야구를 하려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시각이 야구를 더 깊이 즐기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