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KBO는 ABS를 도입했습니다. 자동 볼판정 시스템이 심판의 눈을 대신해 볼과 스트라이크를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오랫동안 반복됐던 판정 논란을 기술로 해결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도입 당시 많은 팬들이 환영했고, 선수들도 기대감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ABS가 도입된 뒤에도 논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심판 판정 논란이 줄어든 자리에 시스템 판정 논란이 들어섰습니다. 타자의 키에 따라 스트라이크존이 달라지는 구조, 눈으로 보이는 공과 시스템이 판정하는 공의 차이, 그리고 선수들이 새로운 기준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ABS가 야구를 더 공정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종류의 불공정을 만들었는지는 단순하게 답하기 어렵습니다. 기술이 사람을 대체할 때 생기는 문제가 야구 판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ABS가 해결한 것과 해결하지 못한 것
ABS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심판 개인의 편차가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심판마다 스트라이크존이 달랐습니다. 낮은 공을 잘 잡아주는 심판, 바깥쪽에 후한 심판이 따로 있었고, 팀 코치진은 그날 주심이 누구인지에 따라 볼배합을 다르게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이 불일관성을 ABS가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ABS는 심판의 편차를 시스템의 한계로 대체했습니다.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순간의 위치값을 기준으로 판정하기 때문에, 포수가 공을 잡는 위치나 투구 궤적과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생깁니다.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가 시스템 기준으로는 존을 통과했지만 눈으로 보면 완전히 낮아 보이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이 차이가 팬들의 혼란을 만들었습니다. 심판을 믿지 못하던 시절에는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ABS 시대에는 시스템이 맞는지 내 눈이 맞는지를 의심해야 합니다. 어느 쪽이 더 납득하기 어려운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ABS는 판정 논란을 없앤 게 아니라 논란의 방식을 바꿨습니다. 그게 진전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릅니다.
타자 키에 따라 존이 달라지는 구조가 만드는 문제
ABS의 스트라이크존은 타자의 신장을 기준으로 상단과 하단이 설정됩니다. 키가 큰 타자와 작은 타자의 존이 다릅니다. 이 방식은 규칙 취지에 맞습니다. 원래 스트라이크존은 타자의 신체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팬들이 이 차이를 실시간으로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중계 화면에서 같은 높이처럼 보이는 공이 타자에 따라 볼이 되기도 하고 스트라이크가 되기도 합니다. 팬들은 왜 저 공은 스트라이크인데 이 공은 볼이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ABS가 정확하더라도 그 정확함이 보이지 않으면 불신이 생깁니다.
KBO는 2025년 존 기준을 조정했습니다. 상단과 하단의 신장 비율을 낮춘 것입니다. 이 조정이 현장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시스템 기준이 매년 바뀐다는 건 선수들이 매 시즌 새로운 기준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투수는 어떤 높이를 승부구로 쓸지, 타자는 어떤 공을 참아야 할지 기준이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기준이 정확하더라도 그 기준이 매년 달라진다면, 그것이 진짜 공정한 기준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공정함은 일관성에서 출발합니다.
기술이 심판을 대체할 때 잃는 것이 있다
ABS 논란의 본질은 기술의 정확성만이 아닙니다. 야구에서 판정이 갖는 의미가 달라지는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심판이 틀렸을 때 감독이 항의했고, 그 항의 장면 자체가 경기의 일부였습니다. 투수가 볼 판정 이후 마운드에서 잠깐 고개를 숙이는 장면, 타자가 스트라이크 판정에 헬멧을 고쳐 쓰는 장면. 이 모든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긴장이 만드는 야구의 질감이었습니다.
ABS가 도입된 뒤 그 질감이 달라졌습니다. 시스템에 항의하는 장면은 어색합니다. 기계가 결정한 것에 감독이 고함을 치는 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판정 논란이 줄어든 대신 경기에서 인간적인 긴장감의 일부가 사라졌습니다. 이게 손해인지 이득인지는 야구를 어떤 이유로 보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정확한 판정이 더 나은 야구를 만드는지, 아니면 사람이 판정하는 불완전함이 야구의 매력 중 하나인지는 오래된 논쟁입니다. ABS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그 논쟁이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경기 안에서 매 타석 일어나고 있습니다.
ABS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사람을 대체할 때는 항상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손실을 인정하면서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ABS가 야구에 제대로 정착하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