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을 당한 뒤 무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선수를 보면 팬들 사이에서 반응이 나옵니다. 저 선수 무성의하다, 열정이 없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옵니다. 반대로 홈런을 치고 주먹을 불끈 쥐며 베이스를 도는 선수에게는 저 선수 열정 있다, 좋아 보인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표정과 제스처가 선수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수의 표정이 경기력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감 있는 태도가 좋은 플레이로 이어지기도 하고, 위축된 표정이 소극적인 플레이와 함께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표정만으로 선수를 판단하는 것이 공정한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무성의가 아닐 수 있고, 감정을 크게 표현하는 것이 진심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선수의 표정으로 경기력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정확한지, 그리고 그 판단이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보면 선수를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표정이 경기력과 연결될 때
선수의 표정이 경기력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포츠 현장에서는 자신감이 경기력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감 있는 자세와 표정이 실제로 신체 반응을 바꾸는 경우가 확인됩니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와 몸을 움츠리고 들어서는 선수는 같은 능력이라도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표정이 팀에 미치는 영향도 있습니다. 에러를 낸 뒤 얼굴을 드는 선수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선수는 팀 분위기에 다른 신호를 줍니다. 얼굴을 드는 선수는 아직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이고, 고개를 숙인 선수는 심리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감독이 선수 교체를 결정할 때 표정을 보는 경우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삼성 경기에서 특정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만 봐도 오늘 잘 칠 것 같다는 감각이 올 때가 있었습니다. 걸음걸이나 타격 준비 자세에서 자신감이 느껴지는 날이 있었고 그런 날 실제로 좋은 타격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표정과 태도가 경기력의 신호가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표정이 경기력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것은 여러 신호 중 하나로 봐야 합니다.
표정으로 선수를 판단하는 것의 한계
표정으로 선수를 판단하는 것의 가장 큰 한계는 표정이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감정을 내면에서 강하게 느끼면서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이 선수들이 삼진을 당하고 무표정으로 돌아올 때 팬들은 무성의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 선수의 내면에서는 강한 집중력이 유지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표정이 감정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문화적 차이도 있습니다. 감정 표현 방식이 문화마다 다릅니다. 외국인 선수들이 감정을 크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한국 선수들 중에는 감정을 절제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이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표정만으로 열정과 집중력을 판단하면 선수를 오해하게 됩니다. 무표정이 무성의가 아니라 집중의 방식인 경우도 있습니다.
팬들이 표정으로 선수를 판단할 때 확증 편향이 작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그 선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으면 무표정이 무성의로 보이고, 긍정적 인식이 있으면 같은 무표정이 냉정함으로 보입니다. 같은 표정인데 다르게 해석되는 것입니다. 표정이 객관적 판단 기준이 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표정은 참고할 수 있는 신호이지만 선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에는 부족한 정보입니다.
표정 너머의 것을 보는 시각
선수를 표정으로 판단하는 것의 대안이 있습니다. 표정보다 행동을 보는 것입니다. 실패한 타석 이후 다음 수비에서 어떻게 집중하는지, 경기 중 코치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팀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를 보는 것이 표정보다 더 많은 정보를 줍니다.
행동은 표정보다 경기 상황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선수의 상태를 판단하는 데 더 많은 단서를 줍니다.
경기 기록도 표정보다 정확한 정보를 줍니다. 무표정으로 삼진을 당해도 최근 타구 질이 좋아지고 있다면 그 선수가 회복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환한 표정으로 타석에 서도 스윙이 크고 타구 방향이 좁아지고 있다면 아직 슬럼프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표정이 아니라 결과와 과정을 함께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판단을 만듭니다.
선수의 표정으로 경기력을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질문의 답은 부분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표정이 경기력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표정을 하나의 신호로 보면서 행동과 기록을 함께 볼 때 선수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표정만 보는 팬과 그 너머를 보는 팬은 같은 경기를 보면서 다른 것을 읽습니다.
선수를 더 공정하게 보려면 표정에서 시작하되 표정에서 끝나지 않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 시각이 선수를 이해하는 깊이를 만들고, 경기를 보는 방식을 바꿉니다.